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2.26 사건 (문단 편집) == 서론 == 2·26 사건에 관한 주요 공적 기록은 완전 비공개로 사건 이후 「암흑재판」이라고 불리던 일본 육군의 군법 회의의 자료가 주된 공식 문서로 여겨져 2·26 사건을 실시간으로 기록한 1차 자료는 없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내용이 수수께끼에 싸여 있었다. 그러나 2019년에 지금까지 공개된 적이 없는 옛 일본 해군이 몰래 기록, 보관하고 있던 제1급 기밀 문서 6권을 전직 토미오카 사다토시(富岡定俊) 소장[* 해군 군령부 제1부장으로 1945년 9월 2일 미 해군의 미주리 전함에서 행해진 항복문서 조인식에도 참석하였다.]이 비밀리에 반출하여 보관하고 있던 것이 발견되어 황도파 청년 장교들의 반란과 진압에 이르는 4일 간의 상세한 내용이 드러나게 되었다. ||||{{{#!wiki style="margin: -6px -10px" [navertv(29608920)]}}} || || '''[다큐] 전모(全貌) 2·26 사건 완전판'''[* 2019년 8월 15일 방송이다.] || 기밀 문서의 내용에는 사건 발생 직후부터 현장에 풀어 놓은 해군 「조사 부대」나 몰래 설치된 「감시 초소」로부터 그야말로 분 단위로 긴박한 상황을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었다. 이 영상은 새롭게 발견된 6권의 해군 기밀문서를 바탕으로 일본 육군 고위 간부가 사건의 이면에 있었던 알려지지 않은 회담과 해군이 반란을 넘어선 대규모 내전[* 일본 해군은 연합 함대의 전함을 주력으로 하는 제1함대까지 동원(전함 나가토, 후소, 하루나, 키리시마가 소속)되어 반란군인 육군의 궐기 부대가 점령한 치요다구의 국회의사당을 함포 사격으로 날려 버릴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까지 상정해 대비했다, 그리고 히로히토의 알려지지 않은 행동도 담겨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